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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장애인의 미래 위한 ‘배움의 빛’ 밝혀요 조회수 9785
작성자 관리자1 작성일 2017.04.20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오용균 교장

1971년 공군 소위로 임관

군 생활 중 뇌종양 투병

수많은 동료·장병의

도움으로 새 희망 얻어

헌신과 봉사의 삶 살기로

 

몸이 아프면 치료받지만

배우지 못한 아픔은

호소할 곳 없다는 말에

장애인야간학교 개교

 

배움의 기회 제공하는 것

책임이자 의무로 여겨

4월20일은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한 ‘장애인의 날’. 이날을 맞아 국방저널은 4월호에서 25년간의 공군 장교 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사는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오용균(71·예비역 중령,학사67기)) 교장을 인터뷰했다. 국방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국방저널’ 코너에서 e북으로 전문을 만날 수 있는 오 교장의 인터뷰를 요약, 소개한다. 오용균 교장은 어릴 때부터 공군 장교를 동경했다. 1971년 11월 공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꿈을 이룬 그는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근무를 시작으로 공군본부 행정감실, 공군10전투비행단 행정관 실장, 공군본부 본부근무대대장 등을 거쳐 공군본부 행정감실 행정관리과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군 생활을 통해 진정한 ‘정의’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한 그는 군 생활 중 갑자기 ‘뇌종양’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1984년 첫 수술이 잘 돼서 회복한 후 부대에 복귀했다.

그런데 1992년 병이 재발하고 말았다. 게다가 수술 중 병원균에 감염되면서 후유증으로 언어능력과 팔, 하반신이 마비됐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지만 끊임없는 재활치료를 통해 언어능력은 어느 정도 회복했다. 당시 공군참모총장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었다.“죽기 직전의 순간을 경험했던 저는 많은 분의 도움으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의 삶은 참 수많은 분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고민이 큽니다.”좌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 교장 역시 당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 앞에서 좌절했다. 종양의 위치 때문에 수술이 위험해서 장애가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침착하게 대처하려고 했지만, 병실에 누워 있노라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자꾸 떠오르곤 했다.매일 밤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그 걱정에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곤 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아내를 보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아내의 엄청난 ‘힘’을 새삼 느꼈고, 삶의 의지를 북돋울 수 있었다.

또한 수많은 군 동료, 선후배, 장병들이 보내준 성금은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오 교장은 많은 분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1%의 가능성으로 살아난 제2의 인생을 가장 소중한 곳에 헌신·봉사하기로 다짐했다.“길가에 핀 민들레 꽃씨처럼 하늘을 날아서 기쁨의 씨앗을 뿌리고 싶었습니다.”이후 오 교장은 후원회를 조직해 장애인들을 돕기 시작했고, 점점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1993년에는 한빛다사랑나눔회(현 ‘모두사랑나눔회’)를 창립하고 2000년까지 운영했다. 오 교장은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많은 장애인이 기본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4년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중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장애인 비율이 56.5%에 달한다. 한 중증 장애인은 오 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배가 고프면 물이라도 마셔 배를 채울 수 있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지만, 못 배워 가슴 아픈 것은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그 학생은 그동안 학원이라도 다니고 싶었지만, 계단을 오를 수 없어 포기했다며 “제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그 간절한 한마디를 가슴에 새긴 오 교장은 학생 22명과 전·현직교사 23명으로 구성된 장애인평생학습시설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를 개교했다. 하지만 개교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건물을 임대했지만, 주변 상가 상인과 주민 반대로 개교가 늦어져 큰 손해를 입게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장애인들을 마치 벌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오 교장은 당시 판사의 주문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을 위해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진 못할망정 이를 거부할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재판은 오 교장의 승리로 끝났고 그는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 이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에는 농아(청각·언어 장애인)와 시각 장애인을 제외한 30~60대 성인 장애인들이 입학할 수 있다.입학 전 교사와의 기초 면담과 테스트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오 교장과 면담해야 한다. 학교를 찾아오는 장애인들은 그동안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야학을 통해 꼭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30명의 교사는 일주일에 2시간씩 자원봉사로 중·고등반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 대학생 동아리 KIST 소속 학생 20명이 기초반에서 국어·수학·영어·과학 등을 지도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발효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내가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비장애인이 많고, ‘내가 무엇을 차별받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장애인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오 교장은 그러한 현실을 깨우쳐주고, 장애인의 인권을 찾고자 노력해 왔으며 많은 성과를 거둔 결과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오 교장은 앞으로도 소외된 장애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언제나 변치 않는 마음으로 봉사하겠다는 다짐과 기도를 매일매일 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과도 같다. 배움이 없다면 그만큼 삶의 질이 낮아지고,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된다.“교육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갈 결심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저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배움을 원하는 장애인이 계신다면 학교(042-521-9933~4)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국의 야학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본 내용은 국방일보 2017.4.20. 자 보도내용으로 회원여러분의 일독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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