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초기 항공인들의 활동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청 내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고, 곧이어 남조선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었다. 이와 같은 준군사조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각각 육군과 해군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공군은 아직 창설되지 않고 있어서 국내외 항공계 종사 인사들은 몇 개의 항공관계조직체를 창설하여 후일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1946년 3월 20일 군 출신 항공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항공기술연맹을 창설하고 명예위원장에 신익희(申翼熙), 위원장에 신치호(辛致浩), 부위원장에 함병선(咸炳善)이 취임하여 처음으로 기성 항공인 단체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단체들은 항공인들의 규합과 항공사상의 보급을 위하여 상호 관계를 유지해 오던 중, 그 해 7월 26일 윤창현(尹昌鉉) 외 여러 명이 재중국 항공인 환국 환영대회를 개최하고, 중국에서 돌아온 최용덕(崔用德)·이영무(李英茂)·김진일(金震一) 등 여러 항공인들과 국내에 있던 항공인들이 뜻을 같이하여 항공인의 단합을 위한 항공단체 통합준비위원회 결성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그 해 8월 10일, 많은 항공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 회장에 최용덕, 부회장에 이영무를 선임하고 항공사상의 보급과 장차 국방의 일익을 담당할 공군 창설을 위하여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 협회는 그 해 10월 25일, 건국공업박람회장에 항공관을 개설하였으며, 12월 5일 여류항공인 이정희(李貞喜)가 춘천에서 여러 학교를 순방하며 강연하였다. 1946년 5월 동남아시아지역에서 귀국한 일본군 항공대 전대장을 지낸 김정렬(金貞烈:일군항공대위)은 당시 통위부 정보국장 대리로 근무하던 그의 동생 김영환(金英煥)을 통하여 미군정청과 자주 접촉을 하면서 항공부대 창설여부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가능성이 보이자, 한국항공건설협회 간부와 항공계 지도급 인사 최용덕·이영무·박범집(朴範集)·장덕창(張德昌)·이근석(李根晳)·김영환 등과 의논, 공군 창설을 관계요로에 건의하기로 하고, 우선 광범위하게 항공계인사들을 규합하였다. (2) 7인 간부 임관 공군 창설을 추진해 오던 항공계 지도자들은 먼저 통위부장 유동열(柳東說)과 교섭하는 한편, 통위부 정보국장 대리직에 있던 김영환은 조선경비대 미 고문관 프라이스(대령)와 구체적으로 교섭하였다. 1948년 3월 미군정 당국은 앞으로 조선경비대에 경비행기부대를 창설한다는 전제 아래, 항공계 지도급 인사들이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교, 미식 훈련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하였다. 이에 과거의 경력이 장성·영관 또는 위관 등의 장교들인데 일개 이등병으로 훈련을 받으라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으나, 항공계의 최고령자인 최용덕은 간부들의 흥분과 반발을 무마하고 입교하도록 설득, 결국 이들은 1948년 4월 1일 수색에 있는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교하였다. 1개월간의 도수훈련(徒手訓鍊)을 비롯, 집총훈련, 미 군편성 및 전사(戰史) 등을 교육받은 뒤, 5월 1일 태릉에 있는 경비사관학교에 입교, 2주간의 장교후보생 교육을 받은 다음 5월 14일부로 소위로 임관, 항공인들의 구심점이 되기 시작하였다. (3) 항공부대의 창설 1948년 5월 15일 경기도 수색에서 통위부 직할부대로서 항공부대가 창설되었다. 창설과 동시에 초대 사령관에 소령 백인엽(白仁燁)이 임명되었다. 그 해 6월 조선경비대로 예속이 변경되었고 7월 9일 초대 사령관이었던 백인엽이 제4여단으로 전출, 후임에 7인 간부의 한 사람인 중위 최용덕이 임명되었다. 한편, 조선경비대 장교로 임관하여 복무중에 있던 소위 박원석(朴元錫)과 소위 장지량(張志良)을 항공부대로 전입시키고, 항공계 출신 하사관의 전입을 받으면서 항공 유경험자들을 선발하여 입대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 27일 명칭을 항공기지부대로 개칭하고 부대 주둔지를 수색에서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로 이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사령관인 대위 최용덕은 국방차관으로 전임되고 부사령관이었던 이영무가 사령관이 되었다. 9월 1일 송정리에서 김포비행장 내로 이동하여 처음으로 기지 근무를 시작하였고, 이로부터 김포기지가 공군의 발상지가 되었다. 김포비행장 내로 이동한 항공기지부대에서는 직무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한·미 합동 근무를 하면서 비행기 획득과 미군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모든 힘을 다하였다.
(4) 연락기(L형 항공기) 도입 정부 수립 후, 9월 4일 L―4형 연락기 10대를 인수하여 열흘 만에 조립작업을 완료하고, 비행부대장인 대위 김정렬이 시험비행을 하였으며, 9월 15일 태극 표지를 단 L―4기 10대가 편대를 지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서울상공을 전시비행하였다. 한편, 10월 19일에 발생한 여순사건의 진압작전에 비행부대가 참가하게 되면서 항속거리가 짧은 L―4기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 미군 당국에서는 정찰용 L―5형 연락기 10대를 제공하여 도합 20대의 L자형 항공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5) 육군항공군사령부 발족과 기구 개편 항공기지부대가 L―4형 항공기를 보유하게 되자 같은 해 9월 13일 항공군사령부로 명칭을 개칭하는 한편, 전반적인 기구 개편을 하였다. 12월 1일 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됨에 따라 항공군사령부는 육군항공군사령부로 개칭되었으며, 사령부 예하에는 여의도기지에 비행부대, 김포기지에 항공기지부대를 새로 창설하고 비행대장에 대위 김정렬, 항공기지부대장에 대위 장덕창이 각각 보직되었다. 비행부대는 2개 소대로 편성하여 소위 장성환(張盛煥)과 소위 김신(金信)을 각각 소대장으로 임명하고 비행훈련을 시작하였다. (6) 공군의 독립 항공사령부는 기구확장·병력증원·비행기확보 등을 하는 한편, 정부·정계 및 미 군사고문단을 상대로 공군 독립을 위한 막후교섭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항공사상을 보급시켰다. 1948년 12월 1일 조선경비대 항공군사령부가 육군항공군사령부로 개칭되자 사령부 간부들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에게 공군의 독립을 건의하여 상당한 호응을 얻었으나, 미 군사고문단측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1949년 4월 항공군사령부는 항공사관학교장인 중령 김정렬이 저술한 『항공의 경종』이라는 책 500부를 만들어 정계 고위층과 관계요로에 배부하면서 공군의 독립과 장비현대화를 역설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49년 6월 28일 육군본부에 항공국을 설치하고, 국방부 별관 안에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또한 항공국장에 중령 박범집이 보직됨으로써 공군 독립은 진일보되었으며, 마침내 1949년 10월 1일 대통령의 영단으로 육군 항공군사령부는 병력 1,897명(장교 242명, 사병 1,655명)과 항공기 20대를 가지고 육군에서 분리되어 공군으로 독립하였다. (7) 기구 및 병력 대통령령 제254호로 발표된 「공군본부직제령」에 따라 1949년 10월 1일 국방부 별관 안에 공군본부를 설치하고, 총참모장에 공군대령 김정렬이 보임되었으며, 인사·정보·작전·군수국의 4개 일반 참모부서와 고급부관실·재무감실·법무감실 등 3개 특별참모부를 두었다. 한편, 육군항공사관학교는 공군사관학교로, 비행부대는 비행단, 항공기지부대는 항공기지사령부로, 여자항공교육대는 여자항공대로 각각 개편하고 공군병원과 보급창이 신설되었다. 같은 해 12월 17일 공군본부 청사를 서울특별시 용산 소재 국방부 별관 내에서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으로 이동하고, 12월 19일 항공기지사령부는 종래 사용하던 여의도와 김포기지 외에 새로운 기지에 부대를 주둔시켰다. 당시 한국에는 제2차세계대전중에 일본군이 건설한 여의도·김포·수원·평택·대전·대구·군산·수영·김해·포항·울산·광주·진해·제주·모슬포 등의 기지가 있었다. 공군은 여러 기지 중에서 여의도와 김포기지를 사용하다가 독립이 되자, 각 기지의 재산손실을 방지하고 비상시 비행부대의 전개 등을 고려하여 수원·군산·광주·대구·제주 등 5개 기지에 기지부대를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기지부대를 전개함으로써 뒷날 6·25전쟁 발발시 UN공군이 신속하게 참전, 기지를 사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또한, 1950년 1월 5일 육군헌병요원 28명을 전입시켜 공군헌병대를 창설하였으며, 초대 대장에 소령 김득룡이 임명되었다. 4월 1일 정훈감실을 창설, 대위 김기완(金基完)을 정훈감에 임명하였다. 한편, 공군 창설을 전후해서 부족한 항공기를 구입하기 위한 국민들의 성금이 모아져 캐나다에서 AT6 항공기 10대를 구입, 1950년 5월 14일 여의도기지에서 명명식을 가지고 ‘건국기’라 칭하였다. 공군의 복장은 육군에서 독립할 당시 육군과 형태가 같았으며, 동복과 모자의 색깔만 달리하여 착용하였다. 모표와 계급장은 새로 창안하여 사용하였는데, 하나의 선과 형이 모두 공군을 상징하였다. 모표는 장교용과 사병용이 달랐으나 다같이 매[鷲]모양과 별로써 공군을 상징하였고, 장교용에는 무궁화형을 배경으로 하였다. 장교의 계급장은 위관은 태극표지에 무궁화의 잎사귀 수로 표시하였고, 영관은 역시 태극표지를 중심으로 잎과 꽃의 수로 상하를 표시했다. 사병 계급장은 격납고를 상징하는 ㅁ자형의 일등병부터 시작하여 한 계급을 올라갈 때마다 활주로의 상징인 횡선을 하나씩 늘려서 표시하였고, 일등병에서 특무상사까지 다같이 상단에 새 모양을 넣어 공군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복제에 조종·정비·통신의 주요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요원은 흉장을 항공부대 때부터 패용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