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쟁의 배경 2001년 9.11테러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2차대전을 촉발시킨 진주만 사건과 비교하면서 이라크를 테러 사태의 지원국으로 지목하였다. 1991년 4월 걸프전쟁이 종결된 이후, 이라크는 미국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고 UN안보리의 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자국에 대한 금수조치의 해제 없이는 사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던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이라크를 이란 및 북한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에 포함시켰다. 이때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성을 강조하면서 후세인 정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 해 9월, 부시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 WMD 즉각 폐지, 테러지원 중단, 국민억압 중지 등 5개항을 요구하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통해 테러세력의 본거지와 지원세력에 대하여 선제행동을 취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년 11월, UN이 안보리 결의 1441호를 채택함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사찰이 이루어졌다. 2003년 1월, 사찰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후세인 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표명한 가운데, 후세인 정권의 자발적인 무장해제를 요구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이 거부할 경우, 무장해제를 위해 군사적으로 공격하겠다고 공표하고, UN 사찰단이 이라크의 WMD 활동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후세인에게 최후의 통첩을 발송하였다. 3월 18일, 후세인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였고,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은 미영 연합군이 후세인 정권의 근거지인 바그다드의 티크리트를 함락시키고 미 국방부가 대규모 전투의 종결을 선언한 4월 14일까지 26일간 진행되었으며, 연합군의 작전 수행 형태에 따라서 아래와 같이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2. 전쟁의 과정 가. 1단계(3. 20∼3. 21) : 연합군의 선별적, 제한적 공습 전쟁 개시 이전 연합군은 걸프전쟁 이후 계속된 이라크 방공망 공습을 통해 제공권의 대부분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으며, 이러한 여건을 토대로 전쟁 개시와 함께 제한된 공습을 수행하였다. 덧붙여, 이라크 지휘부 제거하는 ‘참수공격’(Decapitation Attack)을 위하여 후세인과 지휘부에 대한 제한된 수량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정밀 유도폭탄을 사용하였다. 공격은 정찰위성, 유·무인 정찰기, 특수전요원에 의해 후세인의 거처를 확인하고 국가안보기구의 신속한 결심 과정을 거친 후 개시되었다. 공중 공격의 표적은 바그다드 티크리트에 위치한 후세인 거주지역, 군사 지휘부, 야전군의 통신시설, 바스라 지역의 화학무기 투발수단, 그리고 서남부지역에 위치한 방공망 등이었다. 선별된 표적들을 공격하는 동안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폭격의 규모를 제한하였으며, 이는 이라크 지휘부를 신속히 제거하면서도 이라크 주민이나 병사들의 항전 의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라크 공군은 개전당시 300대 이상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연합군의 공격이 수행되는 동안 완전한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연합군의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공격을 통하여 지휘부를 제거하지 못하였음이 알려지자 연합군은 “충격과 공포”(Shock &Awe) 작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3월 21일, 연합군은 ‘A-day'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대규모 공습을 시작하였다. 이 단계가 수행되는 동안 모래폭풍이 발생하였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1일 약 1,500∼2,000 소티를 출격하였고 이 중 700∼800 소티가 공격에 투입되었다. 연합군은 전투기 및 폭격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에 의한 이라크 전 지역의 전략표적에 대해 지속적인 공습을 실시하였으며, 특히 바그다드 공략을 위해 대통령 궁, 군사 지휘부, 공화국 수비대 등에 대한 집중 폭격을 병행하여 전투력을 무력화시켰다. 도심지역에서는 이라크 정규군에 의한 산발적인 저항과 사담 페다인 민병대에 의한 비정규전을 무력화시키고 지상군을 진출시키기 위해 근접항공지원 임무를 실시하였다. 3월 26일에는 이라크 방송시설 대한 e-폭탄(BLU-114) 정밀폭격으로 이라크 국영 방송이 45분간 중단되고 일부 시설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전쟁에 관련된 선전방송을 차단하였으며, 심리전 일환으로 이라크 군의 와해와 투항을 유도하기 위해 전단을 살포하고 사담국제공항을 점령하여 바그다드 공격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작전 수행 결과, 이라크군은 조직적인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바그다드 일대에 배치된 공화국 수비대들은 공습으로 인해 제대별 손실이 증가(약 20∼80% 손실율)하여 도시로 산개하여 재배치되었으며, 북부와 남부지역에 배치되었던 정규군단 예하 일부 부대들은 바그다드 방향으로 남하 중 연합군의 근접항공지원작전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연합군은 걸프전쟁과는 달리, 대규모 공습의 개시와 함께 지상군을 투입하였다. 이로 인해 지상군 공격 역시 이라크의 저항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진격을 시작하여, 3월 24일에는 바그다드 남방 80km까지 접근하였다. 지상군은 3월 28일 재개된 항공폭격의 지원을 받아 4월 4일까지 바그다드를 포위하고 시가전을 수행할 준비를 진행하였다. 3. 교훈 분석 가. 항공력은 전쟁 승리의 핵심 요소 재확인 나. 핵심표적에 대한 동시공격을 통한 효과 극대화 다. 항공무기의 획기적 발전 라. ‘Real Time Sensor to Shooter’의 실현 가능성 증명 마. 물리적/심리적 마비전략 적용 바. 항공력에 의한 시가전 수행 사. 다출처 첩보를 활용한 정보력의 향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