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군전우회 경주지회 창립총회가 2004년1월31일 오후 6시 경주보문교육문화회관 9층 은하홀에서 시작되었다.
듣기에는 아주 간단한 두줄의 글..
하지만 이렇게 창립총회가 열리기 까지는 엄청난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는 줄은 과연 누가 알아줄까?
공군전우회
아마도 이렇게 창립총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그렇게 좋게 받아드리지 않는 사람들
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작을 하고 나니 감개 무량다.
82년도 몇 명의 선배들이 모여서 창공회 라는 친목단체를 발족하여 96년에 많은 전우들을 찾아 경주지역보라매회를 결성 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어렵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IMF의 틈바구니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 경주지역보라매회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나 또한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고..
경주를 벗어나 새로운 일로 5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돌아오니 모든 것이 변해 있었고 몇 개월이 걸려서 구성한 보라매회 도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지난세월 고생하면서 구성한것에 대한 억울함이 후회가 되었다.
다시한번 우리 전우들을 모울 수 는 없을까 ?
여러날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한 결과 끝까지 남은 전우들이라도 더욱더 결속을 다져서 알리다보면 자연히 회원들이 증가할 것 같아 25명 전원이 유니폼을 맞춰서 입기로 했다.
유니폼에 마크를 달려고 여러군데 확인을 해 보았지만 뚜렸한 것이 없어서 자체제작하여 붙이고 등반대회도 하고 체육대회도 하고 결속을 다지던 중...
공군전우회 중앙회가 구성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다.
우리도 그럼 바로 다시 구성을 했음 좋겠다고 월례회에 나가서 의견을 제시하니 모든 회원들이 찬성을 하여 바로 경비 일백만원을 지원 받아 11월6일부터 진행에 들어갔다.
창립총회를 2004년 1월에 실시하기로 하고 남은 삼개월 동안 하면 일백명은 확보할 것 같아서 큰소리 치고 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회원들이 한사람이 3명만 확보하면 100명이 되니 아주 간단하다 생각을 했는데..
막상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시간이 흘러가는데 회원들은 등한시 하고 ...
속이 타 들어가는데 큰소리 치고 장담은 했는데...
시내 전역에 현수막을 걸고 지방신문에 오단 광고를 내고 했지만 전화연락만 오지 막상 가입을 애기하면 별로 인 것이..
96년도 많은 회원을 확보했지만 그냥 회원일뿐 참여하는 회원은 10%도 되지을 않은 것은
확실한 가입여부를 가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이번에는 완전한 가입을 시키고 년회비와 행사복 뺏지. 스티커. 회원증등
모든 갖춘상태로 참여할수 있는 전우들을 원칙으로 회원확보를 하는데..
한달이 흘러도 10여명 확보하는 그치고 전화연락만 오고...
그러던중 현 감사님이신 홍용선배님과 이용호선배님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 자신감이 있었다.
12월 월례회때 다시한번 강조를 하고 회원들의 협조를 요청하고 독려하고..
조금씩 회원들의 협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회원은 겨우 4~5명
날이면 날마다 전우회 쪼끼를 입고 어디던지 회원있다면 달려가보지만 한사람의 회원도 확보못하고 돌아올때면 과연 내가 왜 이러는지 하늘을 처다보며 후회도 많이 했다.
사나이로 세상에 태어나 한번 마음 먹은 것은 결과를 보고야 말아야 된다고 다짐도 하면서
내일은 많은 전우들이 연락이 오겠지 위로하면서 귀가를 했다.
방문할 전우들을 확인하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가방을 들고 행사복을 차에 싣고
집을 나서는데 배웅하는 아내를 보면 미안한 마음에 빠른걸음으로 나오곤 했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내가..
영업을 하러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할 이 년초에..
엉뚱한 일에 돌아 다니는 남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아마 속으로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하기야 미친것이지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전우는 만나면 대뜸하는 말......선거철이 되었으니 조직하는 것 아니야...!
또 어떤이는 쪼끼장사 하는 것 아니야 !
어떤이는 누구의 사주를 받고 돈받고 하는 것 아니야!
별의별 애기를 다들어가면서 속으로 화를 삼키면서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늘었다.
하지만 !
원로선배님들을 만나면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실 때 누군가가 해야할일를 내가 하는것이라
위로하면서 나중에 웃으면서 애기 할 때가 있을것이라 자신을 달래서면서 다니기를 3개월..
직접만나고 설명하고 부탁한 전우가 200 여명...
차를 몰고 다닌거리가 약 10,000 Km
끼니를 놓치고 못먹은 날이 허다하고..
하지만 창립 2일을 두고 원로회원님들 모시고 임원진들과 상견례를 하는 저녁 목표로 했던 100번째 마지막 회원으로
최고 원로이신 정보용 선배님(34기.1931생)께서 자리에 참석하
시어 회원가입서를 작성하여 건내 주시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기쁜 마음에 큰소리로
100명의 회원을 확보했다고 소리치고 말았다.
모두들 박수를 쳐주시는데 그동안 있었던 모든 어려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오자 마자 아내에게도 "우리 이제 100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큰소리 치니 같이 기뻐해
주는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 힘껏 안아주고 말았다.
창립일전날밤 어릴 때 소풍가기전날과 같구나.
잠은 오지 않고 이것 저것 준비하고 새벽에 잠을 자는둥 마는둥 흥분이 되고 시간이 흘러
갈수록 입술은 말라가고 부디 모든 회원님들 아무탈없이 모두가 참석할수 있길 빌면서 행사장에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에 잠든 아내를 깨워서 사우나 하러가는척 보문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새벽길에 보문입구에 걸려있는 우리 현수막이 쳐졌다는 애기는 들었고 해서
차을 그 방향으로 몰고 가니 아무 영문도 모르는 집사람 어리둥절하면서 따라 왔다.
둘이서 현수막을 다시 치고 목욕재개하고 부디 오늘 행사 무사히 성공리에 끝나길 빌었다.
3개월을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빠진 것이 있고 시장을 보는 것을 선배님에게 부탁을 하고
이것저것 챙기고 나니 벌써 오후 3시
점심시간이 언제인지도 잊어버리고 행사장으로 올라 갔다.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배고품도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성공리에 마칠수가 있었다.
수고했다는 선배님들의 말 한마디로 피곤은 사라지고 ..
멍한정신에 거울을 쳐다보니 몰골이 엉망이구나.
입술은 터지고 눈은 숙 들어 갔고.....
하지만 행복하다 .
우리는 다시 뭉칠수가 있었고 이렇게 해 냈으니까?
회장님의 위로와 두감사님의 헌식적인 노고와 임원여러분의 협조가 있었기에 성공할수 있었다.
바쁘신 진료시간을 뒤로하고 항상 위로하고 격려해주신
김원표 회장님!
회갑을 넘기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철주야 같이 해주신
홍용감사님!
모든일 뒤로 하고 같이 다니면서 회원확보에 전력을 다하신
이용호감사님!
개인택시 영업을 뒤로 하고 언제든지 전우회를 위해 찾아주시던 장양훈 홍보분과위원장님!
그리고 임원여러분!
복많이 받으시고 부자되세요..
2004년 2월 4일
*이글은 제가 일기장에 적은대로 그냥 올렸습니다.
두서가 없더라고 용서하시고
공군전우회가 더욱더 발전할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했음 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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