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비행…노병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우리가 만든 전투기로 마지막 비행’ 소망 이뤄
“적 대공포화망 뚫으며 악전고투한 기억 새롭다”


김두만 전 공군 참모총장이 23일 최초 국산 전투기 FA-50에 탑승해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사진 제공=권형 상사
노병이 돌아왔다.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최초 국산전투기 FA-50을 타고 창공을 날았다. 무려 50년 만의 비행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조국은 눈이 부셨다. 감개무량했다. 노병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흘렀다. 아마 감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65년 전 목숨을 걸고 지켰던 조국의 하늘이다. 구국의 열정 하나로 누볐던 그곳이다. 그 하늘을 국내 최고령의 나이로 다시 비행한 것이다.
‘한국 공군 최초 100회 출격’의 주인공 김두만(88) 전 공군참모총장이 6·25전쟁 65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8전투비행단에서 FA-50에 탑승해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낸 조국 산하를 비행했다.
대한민국 공군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6·25전쟁의 영웅인 김 총장이 평소 그토록 원했던 우리 손으로 만든 전투기로 마지막 비행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이를 위해 김 총장은 지난달 12일 전투기를 탑승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정위 상실훈련, 가속도 내성훈련 등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마쳤다. 그리고 이날 8전투비행단에서 꿈을 이룬 것이다.
김 총장은 비행임무 브리핑을 통해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의 결실”이라며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정예 조종사가 될 수 있도록 부단한 자기계발과 발전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오전 10시30분, 자신이 탑승할 전투기를 미리 찾은 김 총장은 8전투비행단장으로부터 기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일일이 만져보고 확인했다. 이어 직접 조종석에 앉아 내부를 둘러보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현대화된 조종석 계기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대 식당에서 후배 조종사들과 점심 식사를 한 김 총장은 오후 1시10분 비행 장구를 착용하고 천천히 FA-50에 올랐다. 후방 조종석에 앉은 김 총장은 헬멧을 쓰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곧 있을 비행에 대한 기대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이륙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캐노피가 닫혔다. 기체는 굉음을 내며 내달릴 채비를 했다. 엔진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활주로를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1시45분, 김 총장을 태운 FA-50은 대지를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김 총장은 충북, 경기 지역 일대와 철원 상공을 돌아보며 반세기 만에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모습을 영원히 가슴에 새겼다.
2시45분, 약 1시간의 비행을 무사히 마친 김 총장이 탄 전투기가 다시 원주기지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비행을 마친 김 총장은 “65년 전에 비해 천지개벽할 정도로 발전한 최첨단 전투기로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고 있는 우리 공군이 자랑스럽고 든든하다”라며 “언젠가 통일의 순간이 왔을 때 공군이 최선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받을 때 힘이 들어 사실 탑승 전에는 조금 긴장도 했다는 김 총장은 “직접 비행을 해보니 생각보다 쉬웠고 조종석에 앉은 한성우 소령이 잘 조종해줘 편안한 비행이 됐다”고 후배 조종사를 칭찬했다.
김 총장과 동승한 8전비 103전투비행대대 한성우 소령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호국 영웅을 모시고 비행하게 돼 조종사로서 큰 영광이다”라며 “김두만 총장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영공을 물 샐 틈 없이 지키겠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비행을 마친 김 총장은 후배들이 준비한 축하 화환을 목에 걸고 “6·25전쟁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조국을 지켜내기 위해 적의 대공포화망을 뚫으며 악전고투했던 기억이 새롭다”라며 “오늘 이렇게 우리 기술로 만든 전투기를 타보니 마음이 든든하고 공군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흐뭇해했다.
이후 김 총장의 비행 성공을 축하하는 블랙이글스의 화려한 에어쇼가 원주 상공을 장식했다.
이승복 기자 < yhs920@dema.mil.kr >